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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

유럽-스위스,이탈리아,바티칸시티)

by 최영호 2013. 12. 4.


★ 유럽여행기(스위스, 이탈리아.바티칸시티) ★



★ 스위스 루체른(Luzern)

스위스는 영세 중립국이면서도 관광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모든 여행자들에게 스위스만큼 동경의 대상이 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눈 덮인 알프스산맥의 웅장한 모습, 바다처럼 넓은 호수, 녹색의 평원을 따라 통나무집들로 쌓인 평화로운 전원 풍경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루체른은 문화, 자연미뿐만 아니라 20세기의 현대적 편리성도 함께 가지고 있는 천의 얼굴을 가진 매혹적인 도시다.

알프스의 경이와 매우 극적인 호수, 휘황찬란한 야경 그리고 1,333년에 세워진 카펠교는 루체른을 대표한다. 루체른은 스펙타클한 경관을 자랑하는 두 개의 산과 인접해 있다. 즉 회전 케이블카로 유명한 해발 3,020m의 티틀리스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철도를 타고 식당에 오를 수 있는 필라투가 그 것이다. 맑은 호수물위를 가로지르는 유람선도 타볼 만하다. 스위스 루체른에 도착하니 해는 서산에 질 무렵이 되어 우리들은 먼저 빈사의 사자 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루체른도 8년 전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아름다운 경관 그대로였다.

★ 빈사의 사자 상

빈사의 사자 상은 인조석이 아닌 자연석에 새겨진 것으로 1792년 프랑스 혁명때 파리의 츄이루리 궁전에서 루이 16세 가족들이 머물던 궁전을 지키다가 전멸한 800명의 스위스 병사의 용기 있는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1820년 덴마크의 유명한 조각가 토루바르센이에 의하여 제작됐다.

길이가 약 9m로 화살을 맞고 죽음 일보 직전에 처해있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프랑스 왕조의 상징인 백합꽃이 새겨진 방패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 모습으로 사자 상을 보는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스위스의 젊은 청년들은 15세기부터 19세기에 유럽 각지로 귀족들의 경비병으로 차출되어 나갔다. 그 기간 동안에 용병으로 나간 스위스인이 연간 2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지금도 로마의 바티칸 시국을 지키는 용병이 바로 스위스의 용병들이라고 한다.

★ 카펠 교(Kapellbrucke)

카펠 교는 루체른의 상징이다. 이 다리는 석조 다리나 시멘트로 만든 다리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다리다. 길이는 200여m에 이르지만, 다리 위에 지붕이 있는데, 지붕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에는 110장의 삼각형 널판지에 당시 중요한 사건이나, 루체른의 건국 신화 등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화가인 하인리히 베크만의 작품으로 모두 17세기에 그려졌다고 한다. 또한 다리는 세계의 최고 목조 다리로서 건설되었지만, 중간에는 최근 수리한 흔적이 보였다. 다리 난간 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화분에 담겨져 입구부터 끝까지 놓여져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다리 중간에 있는 팔각형의 저수 탑인데, 전에 용도는 방위 탑으로도 사용했으나, 고문실로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루체른 호수를 배를 타고 한바퀴 돌면 좋은데 계획이 없어 타보지 못하였다. 호수에는 백조와 오리 등 많은 새들이 떠 다니고있으니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경관 이였다. 카펠교를 건너 갔다와 사진을 몇 장 찍고 로렉스 시계점에서 쇼핑을 하고 호텔로 들어와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 제 11 일)

아침 6시 루체른 호텔에서 나와 알프스 등정의 관문인 인터라켄으로 이동하였다. 인터라켄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들이 등산열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

★ 스위스 인터라켄(Interlaken Ost) 567m

인터라켄은 융프라우와 아이거를 오를 수 있는 스위스의 중심부에 위치한 관광의 도시다. 인터라켄은 “호수와 호수사이”라는 뜻으로 도시 양쪽에 브리엔츠(Brienzersee) 호수와 툰(Thunersee) 호수가 있다. 인터라켄은 여름철에는 등산객들로, 겨울철에는 스키를 즐기는 관광객으로 사시사철 붐비는 도시로 스위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이 곳을 빼놓지 않는 유명한 관광 코스다. 인터라켄 Ost에서 등산 열차에 승차하면 약 2시간 뒤에 융프라우 요흐에 도착하는 것이 아나라 중간 중간에 열차를 3번정도 바꾸워 타고 올라야 한다.

인터라켄 Ost역에서 우리는 등산 열차로 갈아타고 서서히 융프라우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등산 열차는 협궤 열차로써 가운데에 톱니바퀴가 달려 있어서인지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 방면으로 약 15분을 달렸다. 여기서부터는 환상선의 분기점인 쯔바이루취넨역에 도착했다. 쯔바이루취넨역에서 왼쪽으로 가면 그린델발트로 가지만, 우리의 목적은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다. 산에는 간간이 구름이 걸쳐 있었고, 계곡에는 비취빛 흙탕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계곡이 이어지는데, 가느다란 물줄기의 폭포수가 보이고 있어 친상의 경관을 보는 듯 했다.

라우터브룬넨에서 계속하여 베겐으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려 열차를 갈아타면 뮈렌에 이르게 된다. 이곳은 스위스의 도원경이라고 불릴만큼 환상적이다. 등산 열차 옆에는 정말로 아득히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있고, 저쪽 건너편에 있는 산에는 작은 마을들이 성냥갑처럼 보였으며 구름은 간간이 산허리를 감돌고 있었다. 우리들은 라우터브룬넨(Lauterbrunnen) 796m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는 다른 열차를 바꿔 타고 올라갔다. 여기서부터는 알프스의 초원지대가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파릇파릇한 초목 사이로 알프스의 들꽃들이 피어 있었다. 마치 초록색 천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초원, 계곡 사이로 알프스의 만년설이 보인다.

그리고 깍아지를 듯한 양쪽의 절벽 밑으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2층의 주택의 창가 화분에는 꽃이 피여 있으며, 초지에는 파란 풀들이 자라고 있다. 열차가 융프라우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베겐의 작은 마을도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마을은 조그만 하지만 알프스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호텔이 많이 있다고 한다. 클라이데 샤이데크에 등산 열차가 도착하였다. 여기는 해발 2,061m로 우리는 여기서 내려 다시 등산 열차로 갈아탔다. 약 15분의 여유가 있어, 등산 열차를 뒤로하고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주변에는 초원 지대로 하이킹 코스가 개발되어 있었다. 여기서 바라본 융프라우 정상에는 구름이 걸쳐 있는데, 마치 안개 속에 그림자처럼 눈 덮인 산자락만 보일 뿐이었다. 여기는 라우터브룬넨을 걸쳐온 등산 열차와 그린델발트를 걸쳐 온 등산 열차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는 언제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주변에는 산장과 호텔 둥이 있으며 하이킹을 할 수 있는 작은 도로가 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등산 열차를 타고 올라가면 해발 3,454m인 융프라우 요흐에 도착하게 된다. 등산 열차를 타고 정상을 향하여 올라갔다.





★ 융프라우(Jungfraujoch) 3,454m 등정

융프라우 요흐역은 해발 3,454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역이다. 등산 열차에서 내리니 냉기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위를 뚫어 만든 통로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벽이나 천장은 그 어떤 것도 치장하지 않은 상태로 자연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터널 안은 몹시 추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서 얼음 궁전을 지나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알레치 빙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융프라우 요흐 전망대와 얼음 궁전에서 밖으로 나오니 엷게 깔린 구름 사이로 은백색의 만년설이 정말 장관을 이루고 있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왼쪽에는 4,099m의 묀호가 버티고 서 있으며, 오른쪽에는 4,158m의 융프라우가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다. 눈 위에서 반대쪽의 알레치 빙하 계곡을 바라보면서 몇 장의 기념 사진을 찍고 등산열차를 다시 타고 하산하여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동 호텔에 투숙하였다.







(제 12 일)

★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아침 8시에 호텔에서 나와 밀라노 시내를 관광하였다. 이탈리아 제2의 도시 밀라노는 북 이탈리아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포강 유역의 넓은 평야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로마의 모든 교회들은 밀라노에 거래 은행을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이처럼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면서, 또한 화려한 패션의 도시이기도 하다. 밀라노는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 오페라,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두오모 성당과 유럽 오페라의 중심인 스칼라 극장,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피에타로도 유명하다.

★ 두오모 광장과 두오모(Duomo) 대성당

두오모 광장은 시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념비가 서 있고, 밀라노 시민의 휴식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두오모는 밀라노의 사치와 6세기동안 쌓아온 문화적 유산들을 모두 모아 놓은 현란함을 자랑한다. 구 시가의 입구인 아케이드를 지나면 웅대한 두오모가 여행자들을 압도한다. 1385년에 공사가 시작된 이후 500년이라는 긴 공사기간을 거쳐 1958년에 완성을 보았다.

마치 숲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고딕 양식에 135개나 되는 청탑 하나 하나마다 성자 조각품을 올려놓아 그 수가 3,159개나 되는 웅장한 성당이다. 내부에는 15세기의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있으며, 성당 보물실에는 4-12세기 사이의 각종 보석들이 보관되어 있다. 성당위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오를수 있다. 이 두오모 성당은 로마 성바오로성당 영국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다. 정말 대단히 웅장하고 예술적인 성당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 )

북서쪽에 위치해 있는 스포르체스코 성은 밀라노의 권세있는 영주였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성이다. 다빈치, 브라만테등의 참여로 1466년에 완공되었으며 미켈란젤로가 임정하기 3일 전까지 작업했던 대작 이 미완성으로 보관되어 있다. 현재성의 내부는 고고 미술관과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성 옆에는 여름에는 무료 야외 공연장으로 쓰이고 최고의 피크닉 장소이기도 한 광대한 Parco Sempione가 있다.

★ 산타 마리아 그라치에 수도원(Santa Maria delle Grazie )

두오모 광장의 서쪽 마젠타 거리에 있는 산타마리아 그라치에 수도원은 초기 르네상스 약식의 거대한 16면 돔과 성가대 석을 갖춘 고딕 양식 건물로 1466~82년에 벽돌로 지어졌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보관되어 있는데 부식이 심해 계속적인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어서 베네치아로 이동하였다.

★ 베네치아(Venezia)(Venice)

베네치아는 소설 “베니스의 상인”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상 도시다.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베네치아는 원래 독립 국가로 발전했으나, 19세기 초에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침공 후 점차 나라가 쇠퇴하여 결국 1866년에는 이탈리아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와는 문화적 차이가 엄격히 난다고 할 수 있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로서 주로 수상 문화가 발전했으나, 육지는 고대 로마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치아를 세계적인 관광 도시를 만든 것은 당연히 :곤돌라“라는 수상 유람선 때문일 것이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짜증날 정도로 관광객들이 많이 몰린다. 또한 유리 제품과 각양각색의 무도회 가면이 유명하다. 베네치아는 차가 없기 때문에 모든 교통 수단을 배에 의존한다. 따라서 곤돌라나 수상 모터보트 택시, 바포레토(수상 합동 버스)가 서민의 교통 수단이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큰 광장인 산 마르코 광장 사이를 흐르는 약 3.8km의 대운하에 의하여 둘로 나뉜다.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수상 버스에 승선하였다. 운하의 물은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약간 하늘색으로 오고 가는 배들에 의하여 파란색으로도 보였다. 운하 옆에로 집집마다 선착장을 만들어 배를 하나씩 묶어 놓았으며, 작은 골목 운하에는 곤돌라가 하나씩 있었다. 운하를 달리다 보면 벤드라민 칼레르지 궁전, 페사르 궁전, 카 도로(일명 황금 궁전) 리알토 다리, 유르넬 스피네크 궁전 등 많은 교회와 궁전들이 나지막한 집들 사이에 대나무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약 30분을 달려서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하였다. 산마르코 광장은 관광객으로 만원 이였다.

★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

베네치아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산마르코 광장일 것이다. 베네치아에는 넓은 광장이 몇 개 있으나,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 바로 산마르코 광장으로 이 이름은 나폴레옹이 붙인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는 뜻이다. 또 비둘기 광장으로도 불린다. 광장에는 두칼레 궁전, 종루 탑, 시계탑 등이 있으며, 비둘기들이 수백 마리가 앉아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같이 생활하는 것 같았다. 이 광장은 가끔씩 홍수로 물난리가 난다고 한다.



★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두칼레 궁전은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베네치아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조형미가 아주 아름답다. 두칼레 궁전은 9세기에 건축된후 15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건축 당시에는 충독의 관저 및 최고의 사법부가 있었으며, 15세기경에는 베네치아 평의원들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궁 내부에는 온통 벽화로 치장되어 있는데, 대평의원회의 방에는 틴토레토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가 있다. 크기는 가로가 22m, 세로 7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로 그린 벽화이다. 유화속에는 산마르크 성당과 광장 앞에 충독이 그려져 있다.

★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San Marco )

산 마르코 성당는 궁전처럼 화려한 모습이다. 이 성당이 설립된 시기는 9세기경으로 이집트에 파견된 성마르코가 죽자 이 성당으로 유해를 안치하기 위하여 지은 성당이다. 하지만 그때의 모습은 아니다. 지금의 모습은 11세기말에 지은 성당으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사원의 정문은 정교하게 조각된 성화와 수많은 천사와 선 사자들로 빈틈없이 장식되었고, 내부에는 금빛 모자이크 화가 인상적이다. 정면에서 보면 아치형 창문 위에 뾰족한 4각 지붕 안에 여신상이 있다.

물론 중앙 탑은 돔형이며, 십자가가 있다. 성당 정문 위에 4마리의 청동 기마상이 2개씩 나누어져 양쪽으로 서 있다. 이 작품은 기원전 400-200년의 작품으로, 마치 살아서 움직이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산 마르크 교회의 특징은 바닥과 천장이 모두 작은 돌로 모자이크 화되어있다. 둥근 천장의 모자이크 화와 오른쪽 세례당의 모자이크 화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 종탑(Campanile)

산 마르크 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사각기둥의 탑이 있다. 이 탑의 높이는 99m로 15세기경에는 등대와 전망대의 역할을 하였으나, 19세기경에 관리 소홀로 붕괴되었다가 1912년에 복구 공사하여 완성하였다. 현재는 전망대로 사용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베네치아 전경이 눈에 들어오며, 멀리 리도 섬과 아드리아해의 잔잔한 바다를 감상할 수가 있다.

★ 곤돌라(Gondola)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상징적인 것으로 관광객을 싣고 운하를 따라 다니며 관광용으로 색상은 검은색이다. 곤돌라가 가장 많은 곳은 아무래도 산마르코 광장 부근이다. 길이는 6m, 폭은 1.5m 정도 되는데, 우리들은 곤돌라를 타고 운하를 한 바퀴 돌았다. 곤돌라를 젖는 사공이 있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한바퀴 돌고 팁을 조금 주었는데 별로 흥미는 없었다. 우리들은 베네치아 관광을 마치고 베네치아 호텔에 투숙하여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 제 13 일 )

★ 피렌체 (Firenze)

아침 8시 베네치아를 출발하여 꽃의 도시 피렌체로 이동하였다.

꽃의 도시 피렌체에는 지금도 르네상스 때의 모습 그대로, 그 영광에 빛나는 건축과 회화가 남아있다. 꽃의 도시에 이끌려 숱한 예술가와 시인들이 이 거리를 찾아왔고 사랑했다. 거리를 걷다보면 백합꽃과 환약을 본뜬 메디치가의 문장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약장사 출신이었다는, 이 도시의 대 파트로네 메디치가를 빼고는 이 꽃의 도시를 이야기할 수 없다.

13세의 미켈란젤로를 발견하고 그에게 조각공부를 시킨것도, 라파엘로를 원조해 그 예술을 개화시킨것도 메디치가 사람들 이었으며, 피렌체를 대표하는 꽃의 성모사 두오모에 쿠포라를 완성시킨 브루넬레스키나 방탕했던 화가 필리포 리피의 후원자가 됐던 사람도 메디치가의 사람들 이었다. 이들 수많은 예술가들이 기라성처럼 메디치가라는 태양 주위를 둘러싸던 때가 르네상스의 시대였다.

★ 두오모(Duomo)성당

옛날 피렌체 공화국의 종교의 중심지로, 흰색, 핑크, 그린의 대리석이 기하학 모양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대성당이다. 4세기의 산타 레파라트 교회위에, 당시 피렌체 융성에 어울리도록 "되도록 장엄하게, 그리고 호화로운" 교회를 짓겠다는 취지 아래 1296년에서부터 175년간의 세월을 거쳐 건설한 것으로 약 3만명이모일수 있는 넓이이다. "언덕과 같다"고 형용됐던 대 쿠포라는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것이다.

호화로운 바깥과는 대조적인 내부에는 베네디토 마이아노의 십자가, 안드레아 델 카스타니요와 파올로 베첼로에 의한 2개의 대규모 기마천상화와 로비아의 채색도판으로 만든 아름다운 릴리프로 장식되어있다. 또 쿠포라 안쪽에 바사리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쿠포라에는 464단의 계단으로 오를 수 있어 피렌체 거리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지하의 산타 레파라토 교회 터에는 이 쿠포라의 설계자 브루넬레스키의 묘가 있다.

★ 지오토의 종루(Campanile di Giotto)

높이 82m의 지오토가 설계한 종루. 지오토의 예술성은 단테가 "신곡"에서 언급했을 정도이며, 당시는 "과거의 누구의 예술보다 완전한 것" 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탑의 디자인과 색채의 오묘함, 그리고 섬세한 릴리프를 보면 누구나 이 말을 납득할 것이다.

★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옛날, 그리고 지금도 피렌체 행정의 중심지로 공화정을 모토로 했던 피렌체인이 곳곳에 모여 토론을 벌이고, 거수에 의해 표결에 부쳤던 곳이다. 광장은 베키오 궁전과, 많은 조각이 늘어선 조각관이 있어 야외 미술관의 역할도 한다. 광장의 다비드상과 넵튠의 분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모여 휴식을 취한다.

★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시뇨리아 광장을 내려다보는, 94m의 탑이 있는 강건하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딕건물. 옛 피렌체 공화국 청사이다. 섬세한 안뜰 가운데에는 베로키아가 만든 "이카루를 가진 천사"라는 분수가 있다.

★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아르노강에 걸린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다리 양쪽으로 귀금속 세공점과 보석점들이

늘어서있다. 층계 위는 옛날 우피치궁과 피티궁전을 잇는 통로로, 바사리가 건설한 것인데, 당시에는 작은 차도 지나다녔다고 한다.

★ 산타 크로체 교회(Santa Croce)

피렌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아치있는 광장에 있는 큰 교회. 옆에 부속 건물로 승원 안뜰과 브루넬레스키의 파치가 예배당은 피렌체 르네상스의 정수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140m X 40m의 넓은 교회 내부에는 이 도시에서 쫓겨나 라벤나에서 죽은 단테의 기념 묘부터,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로시니등 276기의 묘가 있다.

내부 장식도 여러 예술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른쪽 5번째 기둥 부분에 있는 도나텔로의 금색 릴리프 "수태고지", 지오토의 프레스코화 "산 프란체스코의 생애", 도나텔로의 "십자가"는 꼭 보아야 한다.

★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di Michelangelo)

중앙에 미켈란젤로의 커다란 "다비드상"이 서있는 광장. 시내 동남쪽에 있는 낮은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아르노강에 의해 둘로 나뉜 피렌체의 장미색 거리와 두오모의 쿠포라가 인상적. 피렌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로마로 이동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 제 14 일 )

★ 폼베이(pompeii)

오늘은 로마 호텔에서 나와 폼페이, 쏘론토, 나폴리를 관광하는 날이다. 폼베이 유적의 입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4-500명 정도가 입장권을 줄을 서서 사고 있었다. 폼베이는 기원전 79년의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화산재에 파묻힌 고대 로마 도시다. 나폴리 근교의 최대 관광지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곳이다. 발굴에 의하여 높은 문화 수준과 우아하고 합리적인 생활을 생생하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 볼만한 곳은 폴로, 주택, 신전, 극장, 상점, 술집 등 서민들의 생활상과 아주 밀접한 곳을 볼 수 있다. 폼베이 유적은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화산 활동이 활발하던 베수비오는 정오가 지나면서 거대한 용암과 검은 화산재를 뿜어내면서 폭발하였다. 순식간에 베수비오 산은 봉우리가 폭발할 때 화산재와 용암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 용암과 화산재는 6km나 떨어진 폼베이와 에르콜레로를 영원히 잠들게 만들었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살아 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정도다.”

그후 대학교수가 정부의 도움으로 발굴하여 유적으로 보존하고 오늘날 최대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있다. 폼베이 유적은 2000년이 지났으나, 그때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 도시를 만들면서 도로와 인도를 만들었고, 급수 시설과 하수관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었다. 또한 곳곳에 마차가 다녔던 길에는 지금도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피올렐리 교수가 처음으로 발굴한 유적지는 동남쪽에 있는 원형 경기장과 바로 옆에 있던 저택들이었다. 이 원형 경기장은 로마의 콜로세오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절반밖에는 되지 않는다. 호레아 또는 포럼 울리토리움 그 옆에는 임시로 만든 박물관이 있는데, 발굴 때 나온 유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이 바로 인간 화석이다. 마치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듯한 인상을 풍기는 인간 화석을 잘 보면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할 때 얼마나 처절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태양욕실 맛사지실 원형경기장등 많은 화산 흔적의 유적을 볼 수 가 있었다. 이어서 쏘렌토로 이동하였다.



★ 쏘렌토(Sorrento)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가곡으로 알려진 쏘렌토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해변 가득 관광객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소렌토 반도의 긴 해안선이 인상적이며, 특별한 유적보다 주변의 오렌지, 레몬밭 가로수가 야자나무로 심어져있어 열대기후지방에 온 기분이 드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쏘렌토 항구 주변에는 이탈리아인들의 별장이 많이 있으며 선착장에는 많은 요트들이 정연하게 매여있다. 선착장에는 한여름도 아닌데 일광욕을 하는 사람, 남녀가 부둥켜안고 시시덕거리며 즐기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있다. 이어서 신도시라는 뜻을 지닌 나폴리로 이동하였다.

★ 나폴리(Napoli)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손꼽히는 나폴리,‘죽기 전에 꼭 한 번 나폴리에 가보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남부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이다. 나폴리는 그리스어로 “신도시”라는 뜻으로 남부 이탈리아 최대의 항구 도시, 나폴리는 카프리 섬과 이스키아 섬을 유람선으로 관광할 수 있는 나폴리만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작은 구릉으로 이어지는 나폴리거리의 풍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나폴리는 로마 테르미니에서 기차로 약 1시간 50분이 걸리는 위치에 있어 아침 일찍 로마에서 출발하면 폼베이를 돌아보고 카프리 섬까지 구경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갈 수 있다. 니콜라마모레 광장을 지나 보비오 광장 앞에서 분수를 뒤로하고 기념 사진을 한장 찍고 내려오니 넓다란 잔디밭의 무니치오 광장이 나왔다. 광장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다. 그 옆에는 일명 원통형 성으로 불리는 누오바 성이 바다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 누오바 성(Castel Nuovo) 누오바 성은 “새로운 성” 이라는 뜻을 가진 성으로 13세기초에 프랑스의 앙주 가문의 샤를이 나폴리 바닷가에 건축하였다. 15세기 때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이 침입하여 이 성을 개축하였다고 한다.. 오른쪽 두 탑 사이에 대리석으로 개선문을 만들었다. 이 누오바 성은 나폴리의 상징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일반성과는 달리 5개의 원통형 탑이 성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누오바 성의 특징은 벽돌로 쌓았다는 것이다. 입구는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조각상이 정말 아름답다. 누오바 성은 대기 오염으로, 아니면 본래 검은 돌로 건축하였는지는 모르나 벽은 온통 검게만 보였다.

★ 리알레 왕궁(Palazzo Reale)

리알레 왕궁은 누오바 성 바로 옆에 있는데, 궁전은 적갈색의 건물이다. 물론 이 왕궁도 나폴리 바닷가를 끼고 있다. 왕궁 내부에는 18-19세기의 도자기와 가구, 회화 등의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궁전은 16세기초에 건축되었으나,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다가 1734년에 부르봉 왕가 때부터 궁전으로 사용하였다. 리알레 왕궁 뒤에는 프레비시로 광장과 산 프란치스코 디 파올라 교회가 있다. 광장은 로마의 산 피에트로 광장보다는 작지만, 입구는 판테논 신전의 입구와 흡사하고 양옆으로 있는 회랑은 산 피에트로 광장을 연상케 한다. 이 광장은 바닥이 모두 네모진 벽돌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왕궁 미술관으로 사용하여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고 있다. 리알레 궁전은 항구쪽에서 보면 더욱 아릅답게 전체를 볼 수 있다.

★ 산타 루치아 항구( Porto di Santa Lucia)

나폴리의 민요 "산타 루치아"로 유명한 항구. 원래 한적한 어촌이었으나 지금은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황혼 무렵 항구를 바라보면 석양빛에 붉게 물든 카스텔 델로보의 모습이 환상적. 서쪽으로 가면 해안선을 따라 시민광장(Villa Comunale)이 있다.

★ 플레시비토 광장

왕궁 미술관 입구쪽에 플레시비토 광장이 있다. 광장은 반원형으로 정면에는 왕궁 미술관, 옆에는 산 카롤로 극장, 뒤에는 산프란츠스코 디올라 교회의 회랑에 둘러 쌓여 있다. 광장 중앙 뒤편과 오른쪽에는 부르봉 왕가의 페르난도와 카를로 3세의 기념 동상이 왕궁을 바라보고 있다. 광장의 바닥은 모두 사각진 돌로 되어 있으며, 거대한 쇠사슬로 자동차의 진입을 막고 있다.

★ 카스텔 델로보(오보 성)(Castel dell ovo)

산타루치아 항구에 있는 성으로 일명 달걀 성으로 불린다. 산타루치아의 해안선을 따라 바닷가 쪽으로 지어진 달갼 성은 볼품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달갼 성은 12세기 때 노르만인들에 의해 건축되었으나, 감옥으로만 사용하였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폴리의 민속품과 토산품이 전시되어 일반인과 관광객들에게 연중무휴로 공개되고 있다. 달걀성에서 나폴리 항구와 베수비오 산의 경치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부근은 한때에 어촌으로 고깃배가 드나들었으나, 현재는 보트와 요트들만이 정박해 있으며, 어린이들은 코발트빛 지중해의 바닷물에 연신 뛰어들면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도로 한 가운데에는 무솔리니 동상이 바닷가를 쳐다보고 서 있다. 나폴리 관광 마치고 로마도 돌아와 소나무 식당에서 한식을 맛있게 먹고 호텔에 투숙하였다.

( 제 15 일 )

오늘은 이번 여행일정의 마지막날로 로마 시내를 관광하는 날이다.

★ 이탈리아(ITALIA) 로마(Roma)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2,000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그대로 현대에 전하여 주는 대도시다. 포로-로마노, 콜로세오 등의 고대 로마 유적,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사원을 비롯한 대교회들, 그리고 에우르, 포로 이탈리코 등의 근대 건축등, 긴 역사에 걸치어 로마가 멋진 경관을 부여하고 있다. 흔한 속담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처럼 로마는 도시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구석기시대까지 가야한다. 특히 BC 7세기경, 로마에 문명을 전해준 그리스인들의 유적과 에트루라이인들의 문화재가 아직도 로마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로마 교황이 지배자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로마는 독일에서 일어난 신성 로마 제국 때문에 결국 이탈리아는 분열이 가속화되었다. 그렇지만, 베네치아 등 몇몇 도시는 동양과 무역을 꾸준히 하여 안정된 생활을 누려 왔다. 18세기 후반에는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근대 국가로 탄생하였으나 경제. 정치. 사회는 불안한 상태였다. 또 제 1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하여 전쟁 빚을 갚으려다가 경제 마져 밑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파시즘이라는 독재체제가 서서히 등장하여 무솔리니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연합군에게 패배함으로써 결국 파시즘은 종말을 보았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충분히 보아온 로마는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 바티칸시국(VATICANO)

★ 바티칸 박물관(Musel Vaticani)

아침일찍 바티칸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벨레데레 궁전 안뜰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라파엘로의 방으로 들어갔다. 라파엘로의 방에 들어가면 그의 최고의 걸작인 "아테네 학당"이 있다. 다빈치를 모델로 하여 플라톤을,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렸다한다. 32살에 짧은 생애를 마감한 라파엘로는 교황의 큰 신임을 얻었었고, 그 덕에 신자도 아니지만 판테온 신전에 묻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목이 부러질 정도로 천정만 바라보았던 그 곳."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있는 씨스티나 예배당으로 향했다.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매달려 누워서 그렸다는 "천지창조"는 그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아담의 창조'와 '밤과낮' 하늘과땅' '에덴동산에서의 추방''노아의방주' 등으로 이루어져있다.198명을 나체로 그렸다는 '"최후의심판"은 32살에 그가 그린 후, 30년이 지난 후에 옷을 그려 입혔다고 한다. 천재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정교하고 크나큰 그림 과 조각 작품들을 어떻게 그렸을까 그저 감탄하고 또 감탄 할 뿐이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나온다.

★ 성 베드로 대성당(산 피에트로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씨스티나 예배당에서 오른쪽 구석문으로 나오면 성 베드로 성당의 왼쪽 옆구리 부분에 위치하게 된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베드로 성당은 직경42m, 높이143m나 되는 큰 돔이 있고 성당 정면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스테인드 글라스에 모자이크 되어있다. 이 성당도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는데, 아쉽게도 그는 이 성당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미킬란젤로의 걸작 "피에타상"이 있다. 성모마리아가 숨을 거둔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미켈란젤로의 친필 서명이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성당 중심부로 들어가면 헬레나 성녀의 조각상이 있고, 오른편에는 발이 닳은 베드로 상이 있다. 베드로의 발에 손을 올리고 소원을 비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시스티나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그림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티칸 궁전의 가장 뒤에 있는 교황의 공식 예배당이자 교황을 선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는 스테인드 그라스가 유일하게 한 곳에만 있는데 바로 중앙 제단 뒤에 창문 위에 있다. 스테인드 그라스를 감싸고 있는 장식이 모두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한간에는 전세계의 금을 다 모아도 바티칸 시국의 금보다 적다고 한다. 그만큼 바티칸 시국에는 보물이 많이 있다는 뜻이다. 스테인드 그라스의 중앙에는 “평화의 비둘기”가 있는데 비둘기의 날개의 크기는 약 3.0m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 스테인드 그라스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 돔 하단에 있는 벽화에 베드로가 들고 있는 펜의 크기가 약 1m 가 넘는다고 한다. 일요일만 되면 산 피에트로 성당과 사원은 교황이 추도하는 미사를 보려고 수많은 신자로 산 피에트로 광장을 메운다. 그런대 요즘은 교황이 한 군데의 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주 일요일마다 교황이 나와 시민들에게 축복의 미사를 연다고 한다. 이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교황의 암살 때문이라고 하며 매주 수요일 11시에도 교황을 알현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약 4시간동안 박물관과 성 베드로 대성당을 관람하고 베드로 광장에 나와 많은 관광객들 틈에서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로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Manumento Vittorio Emanuele 2)

점심을 먹은후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으로 향했다. 이탈리아를 통일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으로 지금은 통일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기념관 앞에서 사진만 한장 찍고 이동하였다.



★ 콜로세오(Colosseo)

콜로세오는 고대 로마 유적 중 가장 큰 것으로 원래는 “거대하다”라는 콜로살레(Colossle)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콜로세오는 1세기경 베스피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준공된 2층으로 된 원형경기장이다. 현재 내부는 거의 파손되어 지하에 묻혀있는 맹수의 우리나 경기에 필요한 도구를 두었던 곳이 위에서 보면 다 보일 정도로 파손되어 있다. 가로,세로가 각각 188×156m로 현대식 축구장보다는 약 1.6배정도 크기와 4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원형 경기장에서는 지하 부분 위에 나무 판자를 깍고 그 위에 모래를 덮고 경기장으로 사용하였다. 콜로쎄오는 자세히 살펴보면 벽돌과 아치형으로 이루어졌다. 상단은 귀족들이 앉아 경기를 관람하였으며 하단은 일반 백성들이 나무 판자를 깔고 앉아 경기를 관람하였다. 콜로세오는 약 7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경기장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과 인간의 처절한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맹수와 싸우는 투사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처절하게 싸우다 생을 마감하는 매우 안타까운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외부는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콜로세오 옆에는 콘스탄티노의 개선문이 있다. 콜로세오 입구에는 영화에 나오는 듯한 로마 병사 복장을 하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로마 병사가 두 명이 있다.



★ 포로-로마노(Pro Romano)

포로-로마노는 카피톨리오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의 사이에 자리잡은 거대한 상업, 종교, 정치활동의 중심지로 여겨진다. 포로-로마노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던 것을 발굴한 것이고, 현재도 한쪽 구석에서는 발굴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고대 로마인들의 생활의 중심지였던 자리다. 현재 많이 발굴되어 그 당시의 모습을 대강 확인할 수 있다. 포로-로마노에서 티투스 개선문을 지나서 파르네세 정원과 유적지를 관람하였다.

★ 판테논 신전(Pantheon)

“판테논 신전”은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교회 앞에 있는 미네르바 광장을 건너가면 로톤다 광장 앞에 판테논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BC 25-27년에 세운 것으로 올림포퍼스의 신들을 제사 지내기 위해서였다. 미켈란젤로는 신이 만든 건축물이라고 극찬하였다. 그러나 판테논 신전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시멘트만 사용했다고 한다. BC 27년에 세운 신전은 AD 80년에 불타버려 128년에 재건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초의 설계자는 아그레빠이다.

미켈란젤로가 판테논 신전을 천사가 설계하였다고 하여 바티칸 시국의 산 피에트로 성당의 돔을 설계를 할 때 판테논 신전보다 조금 작은 42m로 설계를 하였다. 내부는 원형으로 직경과 높이가 같은 43.3m로 마치 장충 체육관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천장엔 약 3-4m의 크기로 구멍이 뚫려 있다. 천장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은 판테논 내부로 반사되어 전채를 자연 채광으로 사용하였다. 내부는 현재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비토리아 에마뉴엘레 2세의 무덤과 옴베로또 1세의 무덤이 있다.

또한 라파엘로의 무덤은 성모 마리아 상이 밑에 유리관속에 있다. 광장은 사각진 돌 조각으로 바닥이 되어 있었고, 판테논 신전은 고대 건조물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이 신전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입구는 16개의 기둥 위에 삼각형의 지붕을 받들고 있다.

★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

로마의 휴일의 명 장면 중 하나에 등장한다. 콜로세움에서 개선문을 지나 대전차 경주장을 따라 걸어오면 약간 큰 거리가 나오는데 이름하여 '진실의 입' 광장이다. 이 광장에 있는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의 입구 한쪽 벽면에 진실을 심판하는 입을 가진 얼굴 모양이 있는데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영화 '로마의 휴일'로 더욱 유명하다. 예전 로마시대 때 하수구로 쓰였던 것이라고.. 관광객들은 하수구에 손 넣고서 좋다고 사진들을 찍는다.

★ 카라칼라 목욕탕(Terme di Caracalla)

카라칼라 욕장은 AD 217년에 카라칼라 황제 시대에 완성된 대중 목욕탕이다. 압피아 옛 도로를 걸어 세계 최대의 목욕탕이었던 카라칼라 욕장에 들어가 보았다. 물론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 잔해만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드넓은 정원이 있는데 옛날 정면에 수도 시설이 있었다던 건물은 70%이상 무너져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고대 로마는 로마 시를 기점으로 광대한 지배지로 통하는 수많은 군용 도로를 뚫었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압피아 거리에서 남쪽으로 걸으면 카타-콤베가 있다. 카라칼라 욕장에는 목욕탕만 있는게 아니라 예배당과 도서관, 오늘날의 헬스 클럽과 같은 체육관도 있어서 남자들의 사교장 역할도 했다고 한다. 카라칼라는 최대 수용 인원이 약 1,600명이 동시에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라칼라 목욕탕 바닥은 군데군데 타일로 장식되어 있으며, 아직도 타일의 잔해가 건물의 옆에 있다. 허나 지붕은 다 허물어져 하늘이 보인다.

★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나보나 광장은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난다”는 뜻으로 8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만들었다. 광장의 크기는264×65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분수가 3개가 있다. 광장의 북쪽에 있는 것이 “넾튠위 분수” 인데 말과 인어가 조각되어 있으며 말에 어린이가 매달려 있다. 어린이가 물고기와 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실물처럼 아름답다. 남쪽에 있는 것이 “무언의 분수” 인데, 상체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하체는 물고기의 꼬리로 되어 있는 분수다.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분수가 “강의 분수”다. 강의 분수는 나일 강, 갠지스 강, 도나우 강, 라플라타 강을 의인화해서 만든 분수로 베르니니가 만든 조각 작품이 일품이다. 중앙에는 오벨리스크가 있고, 양옆으로는 특유의 남성상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가운데에는 말 한 마리가 달려나가는 듯한 기상을 하고 있다.

★ 트레비 분수(Fontata de Trevi)

트레비 분수는 다른 분수와는 전혀 다르다. 트레비는 건물의 한쪽 벽면을 이용하여 분수가 건축되어 있다. 아름다운 조각이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보는 사람들은 트레비에 푹 빠지고 만다. 조각 중 가운데 서 있는 오체아누스(Oceranus 영어의 Ocean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을 조각한 것이고, 거대한 수반은 바다를 상징하고, 분수를 금방이라도 뛰쳐나오려는 말 두 필과 바다의 신 트리톤이 조각되어 있다. 로마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한 번은 꼭 방문하는 관광 코스다.

아니 방문을 안하면 후회할 정도로 아름다운 분수다. 이 분수가 만들어진 시기는 17세기 중반에 니콜로 살비라는 사람의 설계를 토대로 착공되었으나 중도에 건축가가 사망하고 엄청나게 투자한 재정난 때문에 중단되었다가 1762년에 겨우 완성하였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 창문을 잘 보면 오른쪽 끝에 있는 창문은 그림으로 그려진 창문이다. 트레비 분수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던진 동전으로 물 속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물 속에는 동전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데 이 동전은 야간에 시에서 거두어 사회복지 기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트레"는 이탈리아어로 “3”이란 뜻이고,""비"는 “길”이라는 뜻으로 한국어로 해석을 하면 삼거리 분수라는 뜻이다. 분수에 쏟아져 나오는 물은 모두 지하수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분수에서 뒤로 서서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분수를 뒤로하고 동전"1개"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온다."2"』를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3개"를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니 2개까지는 허용하되 3개 이상은 던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담으로 현지 전문 가이드가 말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국민성을 적어본다. (1) 아모레 나라다. 아모레는 "사랑한다"라는 뜻인데 신과의 사랑. 가족과의 사랑, 애인과의 사랑, 하기를 좋아하는 국민이다. (2) 만좌레 나라다. 만좌레는 "먹다" 라는 뜻인데 전 국민이 식도락가이고 고급음식을 먹고 즐기기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외식 문화가 발달되었다. (3) 깐따레 나라다. 깐따레는 "노래하다" 라는 뜻인데 세 사람만 모이면 노래를 부른다. 특히 오페라를 부르는데 누구나 노래를 잘 부른다.

(4) 도루미레 나라다. 도루미레는 "잠자다" 라는 뜻인데 오수 시간대를 갖고 낮잠을 즐기는 나라다. (5) 빠를라레 나라다. 빠를라레는 "말하다" 라는 뜻인데 두 사람이 모이면 대화하고 세 사람이 모이면 노래를 부른다. 청산유수와 같이 말을 잘하고 노래를 잘 부른다. 이번 유럽여행은 두 번째 이지만 앞으로 북유럽과 그리고 지중해를 언제인가는 여행할 것을 다짐해본다. 이번 16일간의 유럽여행을 건강하게 무사히 마친 것을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로마 레오라르도 다빈취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928편(20:30)으로 2002, 7, 4, 인천국제공항 (14:45)에 무사히 도착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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