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청와대 관람(靑瓦臺 觀覽)

by 최영호 2022. 7. 22.

2022510일부터 청와대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개방됨에따라 한달 전에 청와대 관람 신청을하여 202271809:00 아내와 같이 청와대를 관람하였다.청와대는 광복 이후 1948년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며 총독 관사를 집무실로 사용했으며, 경복궁 후원의 이름을 되찾아 '경무대'라고 불렀고. 1948년부터 2022년까지 74년동안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였다.

 

관람경로는 영빈문 영빈관 대정원 본관 소정원 수궁터 관저 침류각 헬기장 춘추관을 관람하고, 관저뒤 산책로 경사 계단길로 올라가 오운정과 미남불을 구경하고 나왔다 관저 뒤편 산책코스는 경관이 아름답고 소나무 숲 자연그대로 산 속으로 만들어 놓아 역대 대통령들이 머리를 식히는데 자주 이용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2시간 동안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나와 54년 만에 개방된 북악산 등산로 2개 코스(칠궁코스와 춘추관코스) 중 춘추관 뒷길로 올라갔다. 이 길은 백악정 까지 청와대 담을 끼고 가파른 아스팔트 도로길로 20~ 30정도 올라가야 한다.

백악정에 올라와 보니 서울시내 아름다운 풍경 남산타워가 보이고 쉴수 있는 벤치 그늘을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앉아 즐기는 모습이다.백악정에서 만세 동방, 청운대 전망대 방향으로 가거나, 청와대 전망대를 돌아보는 코스는 일방통행 길이다.

 

청와대 전망대는 백악정에서 약 15분이면 오르는 곳으로 서울시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데 가지 못하고 백악정에서 칠궁쪽으로 하산 하였다. 칠궁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계단이 많아 올라 올때는 무릅에 무리가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악정에서 칠궁안내소까지 20여분 소요된 것 같다. 칠궁안내소 아래에 있는 조선시대 일곱 후궁의 위패를 모신 칠궁에 들어가 관람하고 나왔다.

 

광장 분수대

영빈관 (迎賓館 )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열었던 건물이다. 외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 행사장으로 이용되거나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도 사용됐다.

 

19781월에 착공해 그해 12월 준공됐으며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형태로 내부에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월계수, 태극무늬가 형상화돼 있다. 1층과 2층에는 똑같은 홀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외국 국빈의 접견행사를 치르는 곳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대규모 오찬 및 만찬 행사를 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했다.

 

청와대 본관 (靑瓦臺 本館)

 

조선시대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의 정남향에 자리 잡고 있는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된 중심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이 거주하던 곳을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한다는 것이 대내외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이제기돼 199194일 신축됐다.

 

전통 목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가장 격조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지붕을 올리고 총 15만여 개의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단층의 별채를 배치했다.

 

 

수궁터 ((守宮-)

 

지금 청와대가 위치한 곳은 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고종 5년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융문당, 융무당, 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현재의 수궁터는 당시 왕궁을 지키는 수궁(守宮)의 자리였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는 이 수궁터에 총독의 관사를 지었으며, 광복 이후에는 미군정 사령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됐다. 1991년 청와대 본관을 새롭게 건축한 후 199311월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그 건물을 철거하고 수궁터로 복원했다.

 

대통령관저 (大統領官邸)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건립됐다.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가 배치돼 있고 앞마당에는 우리나라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대문은 전통 한옥의 분위기에 맞는 삼문으로 만들어졌다. 전통적인 목조 구조로서 궁궐 건축양식인 팔작(八作)지붕의 겹처마에 한식 청기와를 얹은 자형 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침류각 (枕流閣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103)

 

침류각 건물은 경복궁 후원 지금의 청와대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북궐의 부속건물로 보인다. 건평 78로 정면 4, 측면 2칸으로 자 집이다. 세벌대 기단 위에 사각주초를 세우고 사각기둥을 올렸으며, 5량가구에 겹처마·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오른 한칸은 높은 장초석을 마련하여 누마루를 설치하고, 전통한옥의 양식을 따랐다. 전후면 중앙에 불발기창을 두고 상하에 띠살과 교살로 구성한 창호들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상춘재(常春齋)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귀빈들에게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장소 등으로 사용됐다. 현재 상춘재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관사 별관인 매화실이 있었는데 이승만 대통령 시절 상춘실로 그 이름을 개칭해 사용해 왔으며,

 

19783월 천연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양식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이후 상춘재로 이름을 명명하고 19834월 연면적 417.96의 전통적인 한옥식 가옥으로 신축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녹지원(綠地園)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120여 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으로 문·무의 과거를 보는 장소로 이용됐으며, 이후 정원이 되면서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의 부지로 사용됐다.

 

야외행사장으로도 이용됐으며 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각종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또 주변에는 녹지원을 상징하는 소나무인 한국산 반송이 있는데 수령은 약 150여 년에 이르며 높이는 16m이다.

 

 

미남불 (美男佛,석조여래좌상,보물 1977)

 

미남불로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에 조성된 통일신라 시대 석불이다. 1912년 총독부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가, 1989년 청와대 대통령 관저 신축 시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통일신라 불상 조각술의 높은 수준을 알게 하는 문화유산이다.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은 높이 108cm. 너비 54.5 cm, 무릎 너비 86cm로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이 특징으로 '미남불'로 불린다.

 

오운정 (五雲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2)

 

오운정은 경복궁 후원의 휴식을 위해 지은 정자로, 자연의 풍광이 신선 세계와 같다고 하여 '오색구름'을 뜻하는 '오운, 五雲'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원래 위치는 현재보다 아래쪽에 있었으나,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 정자는 사방에 문을 내고 문짝을 들어올려 자연스럽게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종이 후원을 산책하거나 군대 사열 등을 할 때 활용했다고 한다.

 

 

대통령 관저 뒤 산책로

 

 

춘추관 (春秋館 )

 

1990년에 완공된 춘추관은 대통령의 기자 회견 장소와 출입 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예문 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오늘날의 자유 언론의 정신을 잘 상징한다는 뜻에서 채택됐다. 춘추관은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게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이 깃들여져 있다.

 

 

개방된 백악정 산책로

 

 

칠궁 (七宮)

 

칠궁은 조선 시대 때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청와대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육상궁(毓祥宮·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과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 대빈궁(大嬪宮·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 연호궁(延祜宮·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 엄씨) 7개의 사당이 있어 칠궁이라 한다. 1968년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으나 20011124일부터 다시 일반에게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