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2월2일 연휴 마지막 날 북한산 효자동에서 출발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 → 북한산성 입구 → 서암사 → 대서문 → 북한동역사관 → 중성문 → 산영루 → 원점회귀 약 3시간 산행을 하였다.
서암사 (西巖寺)는 조선 숙종 37년 (1711년)에 북한산성 축성이후 한양북쪽 수구문 일대 산성의 수비를 위해 13개 사찰들 중 하나로 규모는 133칸으로 팔도 도총섭 승려(광헌)가 창건하였다. 서암사는 승려들이 수행하며 훈련을 하던 호국승병사찰이었지만 혼돈기인 19세기말 을축년(1925년 7월) 대홍수로 매몰되었다.
고려 충숙왕때 첨의 정승을 지냈던 문인공 민지 (1248~1326년)의 유지가 있던 곳에 창건되어 민지사라 부르다가 서쪽에 있다하여 서암사라 부르게 되었다.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2006년부터 현 서암사 주지 혜안스님이 발굴 및 복원사업을 진행 중 인데 현재는 대웅보전 건물만 중축한 상태로 단청도 안한 상태다..
대서문 (大西門)은 북한산성 탐방로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문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나무를 실은 달구지가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대서문은 가장 낮은 곳에 있어 사람들의 출입이 가장 잦은 곳이기도 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이곳 주위에는 사람이 살았다. 특히 대서문 바로 옆에는 손수건 등의 기념품과 음료수를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북한산성지구 이주 및 정비 사업으로 모두 떠났다.
중성문(中城門)은 대서문에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보인다. 북한산성을 축성한 다음 해인 숙종 38년(1712년), 북한산성의 수비 보완 대책의 일환으로 성 안에 성을 겹쳐 축조했는데, 이 성이 바로 중성이다. 중성문은 대서문이 적에 의해 뚫릴 것을 대비해 만들었다. 행궁과 유영 등의 성내 시설물과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문의 단층 문루는 19세기 말, 수문은 1915년 8월의 홍수에 의해 소멸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중성문과 대남문 사이에는 문화재와 고찰 등이 많다.
산영루 (山映樓)는 북한산성 내에 위치했던 누각으로 조선후기에 설치된 중앙 군영인 총융청에서 관리를 담당했던 중요한 건물이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나 추사 김정희(1786-1856) 등 당대 많은 지식인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시문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1925년 대홍수로 유실되면서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으나, 2015년 고양시의 역사문화 복원사업을 통해 산영루를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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